H_나이를 먹는 게 좋은 점은 이해의 폭이 넓어진다는 점이다. 어렸을 때 봤던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은 러닝타임도 길고 이해하기 힘든 장면들이 많아서 영화를 다 봤어도 찝찝했던 기억이 있는데, 이번에 다시 보니까 예전보다는 훨씬 이해가 잘 되어서 기분이 좋다. 명작이라고 불리우는 이유를 내가 좀 더 알 것 같아서.
대학 전공 수업 때 다른 조에서 이 영화에 대한 발표를 들었는데, 이 애니메이션에서 일본적인 특징이 여기저기 장치로 들어가 있다는 게 재밌었다. 일본의 '노'라는 극에서 다리를 건너면 지금의 현실과는 다른 이세계로 가게 된다는 걸 상징적으로 나타낸다는 점이 센과 치히로에서도 적용 되었다는 것, 여름에 피는 꽃과 겨울에 피는 꽃이 동시에 있어서 센이 일하는 온천장이 비현실적인 세계라는 걸 나타낸다는 것 등 생각나는 게 몇 가지 있다. 그런데 깊게 파고들면 파고들수록 더 깊어질 것 같으니, 오늘은 이 영화를 보고 난 후 감상만 딱 적어보겠다.
20년 전에 만들어진 애니메이션 맞아?
치히로네 가족이 아우디를 타고 이사 가는 장면이 맨 첫 장면인데, 보자마자 작화나 배경음악이 너무 고퀄이라 2001년에 개봉한 애니메이션이라는 게 놀라웠다.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의 작품에서는 항상 음식들이 너무 맛있게 표현되는데, 센과 치히로에서도 마찬가지다. 특히 엄마, 아빠가 음식을 먹는 장면. 나같아도 돼지로 변할 것 같은 느낌.
오물신이 온천장에 왔을 때 유바바와 센이 소름돋아 하는 장면은 특히 고퀄리티 작화가 돋보였던 장면이었다. 오물신도 너무 더럽게 잘 표현 되어서 미간을 한껏 찌푸린 채 오물신 장면을 보았다.
노동의 가치와 성과
영화 속에서 '노동'은 일관되게 강조되었다. 치히로가 가마할아버지와 만났을 때도 '일'을 강조했었고, 유바바도 치히로가 온천장에서 살려면 일을 해야한다고 강조한다. '센'이라는 새로운 이름을 받은 치히로는엄마, 아빠를 되찾기 위해 온천장에서 살아남기 위해 열심히 일한다.
요즘 일하지 않고도 돈이 알아서 굴러들어오는 자동화에 많은 사람들이 관심을 갖고 있는데, 이 영화를 보면서 노동의 가치에 대해 한번 더 생각해 보았다. 자동화를 꿈꾸기 전에 우선은 시드머니가 있어야하니, 노동을 해야하는데... 유바바가 치히로를 나약하다며 고용하기를 꺼려하는 장면에서 고용주 입장에서 나를 고용할 만한 나의 가치에 대해서 생각해 보게 되었다.
그러려면 성과를 보여야한다. 요즘 성과 올리기에 열이 올라서 그런가 센이 오물신을 시중 들고 앞장서서 오물신에게 박혀있는 고철들을 꺼내어 본래 모습인 '강의 신'으로 되돌려 보내는 장면이 인상깊었다. 역시 나의 가치를 인정받으려면 뭔가 하나를 보여줘야겠구나 생각하면서 센이 조금 부러웠다.
성장하는 치히로
치히로는 분명 영화 초반에는 어리고 나약한 어린 아이였다. 그런데 엄마, 아빠를 잃어버리고 악덕 고용주를 만나 담금질 당하며 조금씩 성장해간다. 위에서 말한 오물신 사건 이후에 탄력을 받아서일까, 센을 도와줬던 하쿠가 크게 다치게 되자 센은 제니바를 찾아나서고, 결국 하쿠의 이름을 되돌려준다. 그리고 부모님까지 되찾는다.
점점 성장하는 치히로의 모습을 보고 나의 모습을 되돌아보았다. 최근에 마음이 약해져 있어서 조그만 일에도 예민하게 생각하고, 자신감이 없어지고 있는데 극한의 상황에서 센이 해냈듯 나도 존버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동생과 함께 이 애니메이션을 보았는데, 영화 속에 장치들이 워낙 많아 이야깃거리가 많이 생긴다. 이 영화를 보게 된다면 같이 대화할 사람과 함께 보는 걸 추천한다.
터널을 지날 때
J_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은 유명한 감상글이 하나있다. 이동진 작가가 블로그에 쓴 ‘터널을 지날 때’이다. 그 글은 나에게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에 새로운 감상을 주었다.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은 환경 이야기가 나오는 감상글인데 새로운 감상이 내게 이 영화를 또 다르게 느껴지게 했다.
우리는 힘든 상황을 겪을 때, 어둠 속에 있는 것 같고 앞이 잘 보이지 않는 터널을 지나는 거 같다고 비유한다. 터널을 지날 때 뒤를 돌아보지 말라고 하는 장면에 대한 감상이 새롭게 느껴졌다.
나의 본가에 옛 기찻길이 하나 있다. 거기에 터널이 있는데, 힘든 일이 있을 때 거기를 걸으며 반드시 이 힘든 시기가 지나갈 거라고 암시를 걸게 되었다.
지브리 남주 하쿠 vs 하울 vs 아시타카
가끔씩 지브리 남주 중에 누가 좋냐 하는 얘기나 글을 볼 수 있다. 개인적으로 그중에 하쿠가 좋다. 잘생긴 하울도 멋있는 아시타카도 좋지만, 소년미가 있는 하쿠가 좋다. 지브리의 특징은 여주는 다양한 캐릭터의 모습이 많은데, 주인공이 아닌 남주의 경우에 캐릭터 디자인이 독특하고 멋있어서 좋다. 주요 캐릭터들이 마냥 외관이 잘나기만 한 것이 아닌 독특한 캐릭터라서 지브리 영화가 좋다.
remember my name
이름을 까먹지 말라고 하쿠는 말한다. 그 의미가 가지는 게 여러 의미가 있다고 생각한다. 나는 그중에서 이름은 비유이고, 자아를 잃지 말라는 의미처럼 들렸다. 나이가 들수록 우리는 이름으로 불리는 순간이 점차 줄어든다. 직위나 위치에서의 나 자신만 남을 뿐, 진짜 나는 사라진다고 생각한다. 혹은 앞에 다른 단어가 붙거나 하는 모든 것들이 나의 이름의 의미를 흐리게 한다.
회사를 다니면서 나라는 사람이 좋아하는 건 무엇이고 하고 싶은 건 무엇이고 내가 어떻게 살아야 할지를 점차 잊어가고 있다. 사람과 교류를 하면서도 그걸 잊게 된다. 내가 누군지 잊지 않기 위해서 나의 이름을 잊지 말라는 것. 그것이 이번에 다시 보면서 새롭게 느껴졌다.
여름의 감성이 좋다.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에서는 여름방학의 무더위와 한여름 찰나의 꿈이 느껴진다.
H의 질문 1
영화에 일본적인 요소가 많이 가미된 것 같다. 이해 못했던 장면들이 있었는지.
J_신들이 나오는 장면이 그랬다. 동아시아는 비슷한 듯 하면서 정말 다르다고 느끼는데 우리나라에도 신이 있지만, 센과 치히로에 나오는 신들은 내가 제대로 알아보지 못하겠어서 그랬다.
H의 질문 2
디즈니 영화를 좋아하는 J, 일본 애니메이션은 어떻게 생각하는지 궁금하다.
사실 나는 모든 애니메이션을 좋아한다. 디즈니 영화를 좋아하지만 지브리도 좋아한다. 좀 더 우울한 감성이 있는 지브리 영화를 10대때 좋아했고 커서는 디즈니가 더 좋아졌다. 그래도 살면서 힘듦을 경험할 때는 지브리 영화가 생각난다.
H의 질문 3
가오나시 같은 캐릭터가 인간으로 주변에 있으면 어떨 것 같은지 궁금하다.
한번도 생각해본 적 없는 상상인데, 아마도 피하지 않을까 싶다. 아 그런데 정말로 가오나시같은 캐릭터가 옆에 있으면 어떻게 해야할까. 이걸로 계속 생각해 보아야겠다.
'시선' 카테고리의 다른 글
[넷플릭스] 사랑스러운 프랑스 영화 "아멜리에" (0) | 2022.08.08 |
---|---|
[드라마 리뷰]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 (0) | 2022.08.06 |
[애니메이션 추천]토이스토리 3 감상 (0) | 2022.07.18 |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를 다룬 경제 영화 빅쇼트 리뷰 (0) | 2022.07.14 |
[디즈니 애니메이션 추천] 주토피아 감상 (0) | 2022.07.04 |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