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적도 없이 사라져 버린 추억
J_내가 가지고 놀던 그 많은 장난감은 다 어디로 갔을까? 이 글을 읽고 계신 분들은 자신이 가지고 놀던 장난감이 다 어디로 갔는지 전부 기억하는지 궁금하다. 나는 가장 아끼던 장난감의 마지막 행방을 정확하게 기억한다. 그 이유는 내 손으로 직접 인형을 버렸기 때문이다.
어릴 적 하나의 인형에 애착이 심했다. 아직도 어린 애같이 인형을 가지고 노냐는 말에 화가나 쓰레기통에 그 인형을 박아 넣었다. 당시에 7살이었다. 어린 애가 맞는데, 그게 왜 그렇게 기분이 나빴을까. 가장 소중했던 친구를 버리고 얼마나 울었는지 아직도 기억이 생생하다.
90년대생은 아마 토이스토리와 함께 컸다고 봐도 무방할 것이다. 95년, 99년에 시리즈가 각각 나오고 마지막 토이스토리3 시리즈가 2010년에 나왔다. 나는 마지막 시리즈는 몇 년이 흐른 뒤 성인이 되어서 보았다. 그때 혼자서 얼마나 많이 울었는지 모른다.
우디가 앤디와 헤어지는 것도 슬펐지만, 내 추억의 인형과 기억도 나지 않은 나의 장난감이 그리워서 그랬다. 유치하다고 인형들을 멀리하면서 나의 동심도 그렇게 끝난 건 같단 생각이 문득 들었다.
앤디가 우디를 데리고 가려고 했던 이유는 소중한 장난감이라서, 또 하나는 아마 어릴 때 자신을 회상할 물건이 필요해서 일지도 모른다. 타임머신은 우리에게 없지만, 향기와 물건은 그때의 추억을 불러오니까 어쩌면 그런 물건들이 타임머신이 일지도 모른다.
so long my partner
추억이 아름다운 건 그때로 돌아가지 못하니까. 이별이 슬픈 건 이제는 돌아갈 수 없으니까. 시작해도 예전과는 다르니까. 그 시절의 나는 영원히 없으니까. 반대로 영원한 것은 없기에 이별이 더 소중하다. 내가 그 인형을 아직도 기억하는 건 너무 갑작스러운 이별이라서도 있겠지만, 인형이 없기 때문일 수도 있다. 이제는 영원히 만날 수 없으니까.
토이스토리3는 주인공 앤디가 진짜 성인이 되었을 때랑 나이가 비슷할 때 개봉을 했다. 그래서 더 또래인 우리들에게 큰 의미로 다가왔다. 흔히 속편은 전작을 이길 수 없다고 많이들 말한다. 토이스토리 만큼은 과거의 명성을 더 높이고 마지막이 더 아름다운 영화로 남았다. (물론 4가 나오긴 했지만...)
가끔 과거의 내가 그리울 때 토이스토리3를 다시 관람하곤 한다.
H_존재의 이유를 생각해 본 적 있는가? 나는 좀 현실적이라 당면한 현실에서 어떻게 하면 더 좋게, 더 잘 살아낼 수 있을지에 대해 궁리하는 편이다. 토이스토리3. 단순히 장난감들의 이야기라고 하기에는 나에게 깊은 물음을 던졌다.
장난감의 숙명
장난감은 어린이들이 가지고 노는 물건이다. 앤디네 집에 있는 장난감들도 어린이 앤디와 재미나게 놀면서 추억을 쌓는다. 하지만 영원한 것은 없는 법. 앤디는 자라고 어느덧 대학에 진학할 나이가 되었다. 앤디는 더이상 장난감들과 놀지 않는다. 앤디의 관심을 끌어보려 앤디의 핸드폰을 가져와 전화를 걸어보지만 장난감들은 더이상 앤디의 관심을 얻지 못한다.
아이들을 놀아주는 것. 이것이 장난감의 숙명이다. 앤디에게 버림받고 다락방에 갈 바에야 탁아소에 가는 것을 택하는 걸 보고 장난감들은 자신들의 본능과 숙명을 잘 알고 있구나 생각했다.
맞다. 장난감은 아이들을 재미있게 놀아주는 것이 존재의 이유다. 영화를 보면서 나의 존재의 이유는 뭘까 생각했다. 나도 영화 속 장난감들처럼 원해지고, 쓰임이 있는 사람이 되고 싶은데 세상이 원하는 사람이 된다는 게 뭔지 알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Connecting the dots
장난감들이 탁아소에 가고, 우디는 보니네 집에 가고, 다시 우디는 탁아소로 가게 되어 다같이 탁아소를 탈출하는 줄 알았는데, 최악의 순간까지 가게 되고... 영화를 보면서 설마 쓰레기 매립장까지 가겠어? 하는 생각이 들었는데, 진짜 쓰레기 매립장까지 가게 되어서 여기서 어떻게 결말을 만들지 궁금했다. 그런데 살짝 스쳐지나간 장면들이 복선이 되어 가까스로 앤디의 집으로 돌아가게 되는 장면은 짜릿했다.
그렇게 앤디의 집에 장난감들이 돌아오고 우디는 앤디의 대학에 따라가고 장난감들은 다락방에 가게 되는, 원래 예정되었던 설정으로 결말이 날 줄 알았는데, 장난감을 착하게 다루는 어린이 보니와 만나 장난감으로서의 가치를 회복하면서 끝나는 장면에서 감탄이 나왔다.
영화 속 작은 장면, 장면들이 사실은 중요한 단서였다는 사실을 알게 되는 순간은 정말 희열 그 자체다. 게다가 이렇게 최상의 결말을 만들어내다니. 요즘 부쩍 힘든 나에게 영감을 주었다. 나의 일생에서 일어나는 크고 작은 일들도 보이지 않게 연결되어 나에게 좋은 결과로 돌아오겠지하고.
앤디가 자랐듯, 이 영화도 나이를 먹은 것 같다. 중간 중간 장나감들이 조금 그로테스크하게 표현되어서 좀 징그럽고 무서웠다. 토이스토리 1, 2를 쭉 봐온 이제 나이를 조금 먹은 팬들의 눈에 맞춘걸까. 생각보다 심오하고, 무거운 주제를 던져주면서도 생각보다 더 깊은 울림을 주는 영화였다.
J_ 어릴 때 H는 가지고 놀던 인형이 아직도 있는지 궁금하다. 나는 어릴 때 가지고 놀던 인형이 없어서 가끔 아쉬울 때가 있다.
H_하나도 없다. 다 버렸다. 물건에 애착이 없는 편이라 시간이 지나면 버린다. 근데 토이스토리3를 보고나니 내 물건들이 조금 다르게 보인다.
J_ 개인적으로 궁금한건데 이번 영화를 보면서 울었는지 알고싶다. 나는 매번 토이스토리3를 볼때마다 운다.
H_마지막 앤디와 마지막으로 노는 장면에서 눈물이 찔끔났다. 이제는 장난감이 필요없어진 점을 영화 속 캐릭터들도, 나도 인지를 해서인걸까. 그러면서도 새로운 주인을 만나 즐겁게 노는 장난감들을 보면서도 울컥했다. 자신들의 존재의 이유를 되찾아서 행복해하는 것 같았다
J_소중한 건 가끔은 이별을 해야 더 소중해지는 거 같다고 느낀다. H는 어떻게 생각하는지 궁금하다
H_맞다. 영원한 건 없다. 사람인지라 옆에 계속 있으면 소중함도 무뎌지고, 장점보다는 단점이 더 잘 보이게 되는 것 같다. 나는 부모님과 떨어져서 사는데, 이게 나은 것 같다. 애틋해하면서 가끔 만나서 밥 먹고 좋은 시간 누리고 각자의 생활로 돌아가니까 서로 사이가 더 좋아지는 것 같다. 소중한 건 아껴서 누려야 하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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