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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선

넷플릭스 한국 로맨스 영화 8월의 크리스마스

by 송거부 2022. 5. 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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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월의 크리스마스
"좋아하는 남자 친구 없어요?" 변두리 사진관에서 아버지를 모시고 사는 노총각 ‘정원’. 시한부 인생을 받아들이고 가족, 친구들과 담담한 이별을 준비하던 어느 날, 주차단속요원 '다림'을 만나게 되고 차츰 평온했던 일상이 흔들리기 시작한다. "아저씨, 왜 나만 보면 웃어요?" 밝고 씩씩하지만 무료한 일상에 지쳐가던 스무 살 주차단속요원 '다림'. 단속차량 사진의 필름을 맡기기 위해 드나들던 사진관의 주인 '정원'에게 어느새 특별한 감정을 갖게 되는데... 2013년 가을, 사랑을 간직한 채 떠나갔던 그 사람이 다시 돌아옵니다
평점
9.3 (1998.01.24 개봉)
감독
허진호
출연
한석규, 심은하, 신구, 오지혜, 이한위, 전미선, 권혜원, 손세광, 최선중, 김애라, 민경진, 이용녀, 최명숙, 김기천, 신삼봉, 전대병, 김도윤, 전태치, 류광철, 장혜윤, 장진경, 이민수, 김재록, 이찬우, 강승용, 이석우, 박용진, 허장근, 윤동원, 주선웅, 윤형문
출처: 네이버 영화

H_얼마 전 군산여행을 다녀왔다. 군산 여행지를 검색하니 다들 영화 8월의 크리스마스 촬영지인 '초원 사진관 '에 들르길래 영화에도 관심이 갔다. 이왕 갈 거 영화도 보고 가면 좋을 것 같아서 보게 된 8월의 크리스마스. 한국 고전 로맨스 영화로 꼽히는 영화 중 하나인데, 여태까지 안 봐서 잘됐다 싶었다. 그런데 영화를 다 보고나니 그냥 로맨스영화가 아니었다. 시한부 선고를 받은 한 사람의 일생 '끝자락'을 담담하게 담아낸, 생각보다 좀더 생각하게 만드는 영화였다.

'나'였다면?

주인공 정원은 곧 죽는다. 조그만 사진관을 운영하는 정원은 늘 그랬듯, 사진관에 출근해 제 할일을 한다. 늘 그랬듯 가족과 밥을 먹고 가끔은 친구도 만난다. 시한부 선고를 받고도 늘 해온 일들을 묵묵히 성실하게 해나가는 모습이 인상깊었다.

'나라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20대 중후반을 암울하게 보냈다. 공무원 시험 준비한다고 몇 년을 날렸는데, 날린 그 세월은 어둡고 우울했다. 공시를 그만두고도 후유증을 얼마간 앓았는데, 막막했던 그 시절 어차피 이번생은 망한 것 같으니 오늘만 살자는 마인드로 욜로라이프를 즐겼다. 나는 사고 싶은 것 사고, 먹고 싶은 것 먹었었는데 주인공 정원은 나랑은 정반대라 사실 이해하기 어려웠다. 내가 정원이라면 그동안 해보고 싶은 것 실컷 할 것 같은데.

당당한 매력녀 '다림'

추측하건대 영화속 정원과 다림은 나이차이가 꽤 나보인다. 그럼에도 다림은 당돌하게 정원에게 들이댄다. 나보다 어려보여서 그런가 다림이 정원에게 하는 말들은 귀여우면서도 매력있다. 아마 정원도 알지 않을까. 자기를 좋아한다는 것. 정원에게 점점 마음이 커지는 다림의 모습이 잘 보여서 귀엽고 사랑스러웠다. 남자가 여자에게 다가가고 구애하는 것이 보통의 생각인데 이 영화에선 다림이 초원 사진관에 자주 놀러가고 적극적으로 들이대는 모습이 당당하고 멋졌다.


영화에서도 말하듯 세상에 영원한 건 없다. 모든 건 변하고 사라진다. 이건 모두가 아는 사실이지만 아픈 것도 사실이다. 이걸 어떻게 받아들이고 어떻게 극복할지는 각자의 몫. 나는 이 가변성을 어떻게 생각하고 있나? 한참을 생각해 보게 된다.

제목의 중요성

J_전에 글에서도 한 번 언급한 적이 있지만, 개인적으로 상반되는 단어나 속성이 하나로 잘 연결될 때 나는 짜릿함을 느낀다. ‘마지막 첫사랑’이라든가 ‘내 인생을 망치러 온 나의 구원자’ 같은 제목이나 대사를 볼 때 그렇다. 8월의 크리스마스라는 제목도 마찬가지다. 항상 8월이 되면 이 영화가 생각이 난다. 크리스마스가 12월이라는 걸 모르는 사람은 없다. 그런데 8월의 크리스마스라, 이 말도 안 되는 제목에 누가 관심을 두지 않을 수 있을까. 제목에 이끌려 보았고, 내용보다 세기말 감성에 더 끌렸다. 영화는 지금 내가 보기에 너무 낡아버린 것들이 많이 있다. 하지만 그게 영화 감상에 크게 해칠만한 부분까지는 아니라고 생각한다.

심심한 여운

정원은 시한부 선고를 받았다. 그는 내가 보아온 미디어의 어떤 시한부 환자보다 덤덤했다. 영화는 자극에 길든 내가 예상하지 않은 방향으로 꾸준히 흘러갔다. 둘은 눈물이 홍수가 날 정도로 울지도 않고 우리가 생각하는 이별을 하지도 않았다. 다림에게 아프다는 말도 하지 않았다. 그들은 남들보다 빠른 크리스마스를 맞이하고 겨울에는 관계의 끝을 맺고 또 시작했다.

세기말의 감성

다림 역을 맡은 심은하가 정말 세기말 감성에 잘 어울리게 나온다. 세기말이 나도 거의 기억이 나지 않는다. 하지만 그때만 할 수 있는 감성이 있지 않은가. 핸드폰도 보급된 게 아닌 시절이라 조금은 느리고 불편하지만 그래서 더 서로를 곱씹어볼 시간은 긴. 그런 낭만이 있는 시절이라고 생각한다. 영상미도 살짝은 바래진 느낌에 기분이 좋았다.

단순 로맨스가 아닌 이 영화는 삶과 사랑을 우리에게 한 번 생각해 볼 기회를 주었다. 옛날 영화임에도 20년이 지난 지금까지 회자되는 이유가 분명히 있어 보이는 영화였다.


H: 주인공 정원처럼 곧 죽는다는 선고를 받는다면 어떻게 살 것 같은가? 나는 욜로 인생을 살 것이다.
J:삶에 애착이 그리 크지는 않지만 죽음은 미지의 영역이다. 인간 그 누구도 죽음 다음에 어떤 세상이 펼쳐지는지 알지 못한다. 거기서 오는 두려움과 슬픔에 몇 날 며칠은 울지 않을까 싶다. 억울하고 슬플 거 같지만 좋은 사람들과 시간을 보내면 인생을 조용히 정리할 거 같다.

H: 정원의 편지는 다림에게 전달 되었을까? 내 생각엔 전달 안되었을 것 같다.
J: 나도 그렇다. 전달되지 않아야 하고 전달되지 않아야 이 영화의 감성에 더 맞다고 생각한다. 영화라 아름다워서 그렇지 사실은 정원은 좀 이기적이라고 생각한다. 다림에게 큰 짐을 안겨주고 싶지 않다.

H: J가 정원이라면 다림이라는 인물과 어떻게 지낼 것 같은지 궁금하다. 나라면 사정을 다 얘기하고 다가오지 못하도록 했을 것 같다.
J: 나 역시 그렇다. 사정을 얘기하진 않더라도 괜히 나라는 사람을 그 사람 인생에 닿을 수 없는 추억으로 만들고 싶지 않다. 그게 얼마나 잔인한지 알 거 같아서. 갖지 못해 생기는 환상을 품게 하는 것이 제일 몹쓸짓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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